한국 바이오회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먼저 공급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임상 자금이 부족한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해외 제약회사 등에 백신을 가장 먼저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국산 백신마저 해외에 뺏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임상 1상과 2상을 진행 중인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업체는 SK바이오사이언스 제넥신 유바이오로직스 진원생명과학 셀리드 등 다섯 곳이다. 이들 가운데 우리 정부와 선구매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정부는 예산이 부족한 데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는 예외 없이 임상 3상 단계에서 해외 자금을 조달했거나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한 백신개발회사 대표는 “최소 1000억원 이상이 드는 임상 3상 비용의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한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우선 공급 등을 약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해외에 선공급을 약속한 회사도 있다. 임상 3상을 앞둔 제넥신은 인도네시아 제약사 칼베파르마에 1000만 회분의 백신을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칼베파르마는 임상 3상 비용을 대기로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14개국으로 이뤄진 코백스퍼실리티 산하의 전염병대응혁신연합(CEPI)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엔데믹(주기적 발병)’으로 진화하고 있어 백신 수급이 올해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산 백신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산 백신 개발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선구매 및 개발 지원 명목으로 화이자에 2조원, 모더나에 4조원을 지원했다. 한국 정부는 백신 개발 지원에 작년과 올해 1177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게다가 이 자금을 지원받아도 국내에 우선 공급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조차 두지 않았다.

이선아/김우섭/이주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