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임플란트 업체 오스템임플란트에서 터진 ‘1880억원 횡령 사건’에는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가총액 2조원, 연간 6316억원의 매출을 내는 코스닥시장 상장사에서 2000억원에 가까운 횡령이 내부 직원에 의해 버젓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런 사실을 3개월 동안 ‘깜깜이’ 상태로 전혀 몰랐고 심지어 횡령을 저지른 직원은 이 기간 정상적으로 근무했다. 업계에서는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코스닥 상장사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혼자 회삿돈 주무르며 1880억 '꿀꺽'…회사는 3개월간 몰랐다

‘1880억 횡령’ 오스템에 무슨 일이

오스템임플란트는 3일 1880억원 횡령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 회사 재무팀장 이모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오스템임플란트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206억원인데, 이 중 3분의 2가 이씨 개인 계좌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이씨는 국내 의료기기 업체 등에 근무하다가 2018년 오스템임플란트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이씨가 은행 잔액 증명서를 위조해 작년 10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운영 자금 1880억원을 자신의 은행과 주식 계좌로 이체했다”고 밝혔다. 은행이 회사 자금 담당자에게 매달 잔액 증명서를 보내는데, 이씨가 이 서류를 조작해 실제 회사 계좌에 돈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이씨의 상급자가 지난달 31일 연말 자금 결산 내역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회삿돈이 이씨 계좌로 빠져나간 사실을 파악했다”고 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그날 저녁 곧바로 이씨를 서울 강서경찰서에 고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잠적한 뒤였다. 이씨는 회사가 횡령 사실을 인지하기 직전인 지난달 30일부터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상 노출될 정도로 주식 투자?

회사는 이씨가 자금 담당이라는 자신의 업무상 지위를 악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아무리 재무팀장이어도 정상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1880억원이라는 거액이 회사 명의 은행 계좌에서 이씨 명의 은행과 주식 계좌로 넘어가는데 어떻게 회사가 몰랐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이씨가 자금을 담당하며 입출금 등 은행 업무까지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씨와 함께 자금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5~6명으로 이씨 업무에 대한 중복 체크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가 1000억원이 넘는 회삿돈으로 주식 투자를 한 점도 미스터리라는 시각이 많다. 이씨는 작년 10월 반도체 장비 회사인 동진쎄미켐 주식 391만7431주를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주당 취득 단가는 3만6492원으로, 주식 매입에 쓴 돈만 1430억원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슈퍼 개미’로 등장한 이씨의 정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이씨가 동진쎄미켐 주식 대량 매수 사실을 공시하며 그의 이름과 주소지,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 일부까지 공개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횡령한 돈으로 지분 공시를 해야 할 정도로 주식 투자를 했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잘나가던 오스템, 초대형 악재에 ‘휘청’

오스템임플란트는 최근까지 중국 사업이 순항하며 역대급 실적을 써왔다. 2020년에는 매출 6316억원에 영업이익 981억원을 기록했다. 3년 전인 2017년 매출 3978억원보다 1.6배 늘었다. 작년에는 1~9월 누적으로 586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연간으로 작년 8000억원 이상 매출을 기대했고, 올해는 매출 1조원 달성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20년 초 2만2000원대에 머물렀던 주가는 작년 16만원까지 8배가량 뛰었다. 하지만 이번 횡령 사건으로 본업인 임플란트 사업의 타격은 물론 투자자 신뢰도 한순간에 까먹을 위기에 처했다. 회사는 횡령 자금을 최대한 회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작년 당기순이익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재영/이주현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