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번역 한경바이오인투] 다양한 세포 사멸 경로 찾아내…차세대 항암제 새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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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이오인투 작성일 21-01-27 08:0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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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에 나오는 대사다. 이것은 비단 인간만의 고민은 아니다. 우리 세포도 매 순간 죽을지 살지를 고민한다. 세포가 스스로 결정해 죽는 현상을 ‘아폽토시스’(세포자살)라고 부른다. 아폽토시스는 불필요한 세포 및 돌연변이 등으로 인해 생긴 비정상적 세포를 제거하는 데 필수적이다. 아폽토시스는 태아 발생에서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 손가락의 마디 사이가 떨어져 있는 것도 아폽토시스 과정 덕분이다. 태아 시절 손가락은 개구리처럼 다 붙어 있지만 마디 사이의 세포가 죽어 없어져 갈라지게 된 것이다.
아폽토시스는 또 우리 세포를 ‘남’으로 잘못 인식하는 면역세포를 미리 제거해 면역세포가 외부 물질에만 반응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면역세포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린다. 돌연변이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도 아폽토시스로 제거돼야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세포자살과 반대로 감염 및 상처와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세포가 죽기도 하는데, 이를 ‘네크로시스’(세포괴사)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2000년 무렵 네크로시스 또한 세포가 특정 환경에 반응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세포자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관련 증거들이 밝혀짐에 따라 이런 방식의 세포사멸을 ‘네크롭토시스’ 또는 ‘예정괴사’로 부르게 됐다.
아폽토시스와 네크롭토시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염증 유도 여부에 있다. 아폽토시스로 죽는 세포들은 세포 내부가 먼저 파괴되고, 주변 면역세포에게 세포의 죽음을 알리는 ‘찾아라(find-me)’ 신호와 ‘먹어라(eat-me)’ 신호를 보낸다. 면역세포가 이를 깨끗하게 제거해 염증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반면 네크로시스 및 네크롭토시스는 세포막이 파괴되면서 죽기 때문에 세포 내부 물질이 세포 밖으로 유출된다. 이 중에는 염증반응을 유도하는 손상연관 분자패턴이 있어 심각한 염증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균의 침입에 의해 세포가 죽게 되면 세포는 의도적으로 네크로시스로 죽으려 한다. 염증반응과 면역세포를 불러서 병원균에 대항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네크롭토시스는 염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전신성 염증 반응성 증후군과 더 나아가 패혈증과 같은 치명적인 손상을 유도할 수 있다. 최근에는 네크롭토시스에 의한 염증반응이 암에 대항하는 면역 반응을 활성화시킨다는 연구결과에 근거해 네크롭토시스를 이용한 항암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이 외에도 페롭토시스, 파이롭토시스, 네토시스, 엔토시스 등의 다양한 세포사멸경로가 있음이 밝혀지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수행되고 있다. 이처럼 죽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죽을지 선택하는 것이 주변 세포와 개체에게 매우 중요하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면역질환, 암,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병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예방 및 치료법을 제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암은 세포의 이상증식으로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이다. 아직까지 가장 좋은 항암 치료는 외과적인 수술로 직접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불가능한 위치에 암이 존재하거나, 여러 부위에 퍼져 있을 경우 방사선 및 약물로 암을 없앤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암제는 직접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세포독성 항암제며 이를 소위 1세대 항암제로 분류한다.
최근에는 2세대로 분류되는 표적항암제도 많이 쓰이게 되는데, 이는 주로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한다. 하지만 항암제에 선천적 저항성을 갖고 있는 암과 한 번 치료 후 재발해 후천적 저항성을 갖는 암은 기존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이런 환자의 예후는 매우 좋지 않다. 따라서 많은 연구진이 항암제 내성암의 치료법을 찾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3세대로 불리는 면역항암제고, 다른 한 축은 암대사저해제다.
암은 위암, 간암, 폐암 등 종류별 특성과 치료법이 다르지만, 무한 증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위해 포도당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지질도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암으로 인해 해당 기관이 저산소, 저영양 상태의 극한 환경에 이르러도 암세포는 활발히 대사활동을 하며 증식할 수 있고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이런 암의 대사과정을 이해해 에너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대사약물이 새로운 항암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페롭토시스’라는 새로운 세포사멸 기전을 이용한 난치성 위암의 효과적인 치료방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원인을 규명했다. 세포막에 존재하는 불포화지방산은 쉽게 과산화가 된다. 이때 활성산소(ROS)가 발생하면서 세포막이 파괴돼 죽는 괴사성 세포사멸 경로를 페롭토시스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세포에는 지질과산화를 다시 돌려 놓는 효소가 존재해 세포의 사멸을 막는다. 암세포에 이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처리하면 페롭토시스가 진행돼 암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 항암제 내성암 등 다양한 난치암에 대한 효과적인 세포사멸 경로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대사제어연구팀은 세브란스병원 허용민 교수팀 및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황금숙 박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위암 환자의 전사체 정보를 기반으로 위암 세포주들을 중간엽형과 상피형으로 분류했을 때 중간엽형 위암세포만 페롭토시스 약물에 의해 죽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중간엽형 위암세포에서 다중불포화지방산과 이를 합성하는 효소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페롭토시스 진행에 필수적인 물질을 형성하는 신규 유전자 2개(ELOVL5, FADS1)를 발굴했다. 이 유전자는 지질과산화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위암세포를 잘 죽게 만들었다.
이번 연구는 페롭토시스라는 새로운 세포사멸 기전에서 불포화지방산 합성경로의 중요성을 밝힌 것으로, 새롭게 발굴한 유전자는 항암제 반응성을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기존의 표준 항암제로는 재발을 방지할 수 없는 난치성 위암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페롭토시스는 암뿐만 아니라 심근경색, 동맹경화, 비알코올성지방간질환, 뇌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명공학연구원 대사제어연구센터도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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